이달 최고 148개사 동가입찰 발생
업계 "브로커들의 시장 교란 징후"
담당자 1인이 수천개 내역서 작성
LH 종심제 앞두고 몸풀기 우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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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경제=최지희 기자] 지난해 한국토지주택공사(LH) 종합심사낙찰제(이하 종심제)에서 활개를 쳤던 입찰 브로커들이 이달 간이형 종심제에 출몰해 최고 148개의 동가 입찰 사례가 나왔다. 업계에서는 이들이 다가오는 LH 종심제 입찰을 앞두고 몸 풀기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18일 대구지방조달청이 개찰한 간이형 종심제 방식의 ‘금호강 영천지구 하천환경정비사업’에는 총 362개사가 입찰에 참여해 치열한 접전을 벌였다. 투찰금액 상위 20%와 하위 20% 배제 원칙에 따라 균형가격 산정 대상업체는 218개사로 좁혀졌다.
이렇게 산정한 균형가격은 219억9905만7331원. 균형가격을 이루는 최저금액과 최고금액 차이가 297원에 불과해 총 74개 가격에 2개사씩 동가 입찰이 나왔다. 무려 148개사가 동가 입찰한 셈이다.
이달 조달청이 집행하는 간이형 종심제에서 비슷한 사례는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지난 4일 개찰한 ‘홍천강 반곡지구 하천정비사업’에서 동가 입찰 2개사로 시작해 8일 ‘금강권역 제방보강 정비공사’에서 46개사, 10일 ‘한국교원대학교 부설체육중고등특수학교 신축 공사’에서 70개사, 11일 ‘홍천강개야2지구 하천정비사업’에서 134개사가 동가 입찰을 했다. 이어 18일 ‘금호강 영천지구 하천환경정비사업’에서 역대 간이형 종심제 최다 동가 입찰(148개사)이 나왔다.
〈대한경제〉가 2023년부터 집행된 간이형 종심제 방식의 하천환경정비사업 현황을 분석한 결과, 이같이 동가 입찰이 많은 경우는 없었다.
예로 2023년 최다 동가 입찰 사례였던 ‘국가하천 배수영향구간 하천환경정비사업(서정리천)’은 16개사였고, 2024년 최다였던 ‘섬진강 적성1지구 하천환경정비사업’도 14개사에 불과했다.
건설업계는 올해 4월부터 입찰 브로커들이 활동을 재개하며 이상징후가 나타난 것으로 보고 있다.
A사 관계자는 “종심제가 입찰 브로커에 취약한 발주방식인데 특히 간이형 종심제는 입찰에 참여하는 건설사가 4∼6등급 회사들이기 때문에 내역서 작성을 외부에 맡겨 입찰 브로커들이 활동하기 아주 좋은 판”이라며, “각 입찰 브로커가 30∼50개사씩 쥐고 입찰에 나섰다고 봐야 한다. 브로커가 있지 않고서야 200억원 규모 시설공사에서 원단위로 동가 입찰이 이렇게 많이 나올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조달청이 사태의 심각성을 아직 인지하지 못한 상태란 점이다. 간이형 종심제는 입찰 집행 기관이 지방조달청으로 분산돼 입찰 담합 등 이상 징후를 빠르게 파악하기 어려운 구조다. 이를 입찰 브로커들이 교묘하게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B사 관계자는 “내역서만 대리로 작성하면 수수료가 낙찰액의 0.1% 정도인데 균형가격을 조정해 수주까지 진행해 주면 0.5%를 받는다. 내역서 작성에 능숙한 입찰 브로커 몇 명이 간이형에서 합을 맞추고 종심제로 넘어가는 구조”라며, “작년 LH 종심제에서 입찰 시장을 교란했던 브로커들이 전혀 처벌을 받지 않다 보니, 되레 ‘조달청도 못 잡는다’라며 더 활개를 치고 다닌다”고 귀띔했다.
정부가 입찰 대리인과 입찰 브로커 사이의 명확한 기준점을 잡지 못해 갈팡질팡하는 사이 기술력 좋은 건설사에 공사를 맡기겠다던 종심제의 근본 취지는 흔들리고 있다.
대형 건설사 임원은 “내역 입찰 프로그램 회사와 연간 계약을 하면 입찰 담당자 1인이 수천개의 내역서를 만들 수 있는 상황을 악용한 것이다 보니, 조달청은 이를 민사 문제로 보고 있는 것 같다”며 “간이형 종심제는 이미 제도에 큰 허점이 드러난 만큼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국토교통부와 기획재정부가 나서야 할 단계”라고 말했다.
최지희 기자 jh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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