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법적으로 분리발주가 의무화된 공종은 전기공사와 정보통신공사다. 공공공사뿐 아니라 민간공사에도 전기ㆍ정보통신공사는 분리발주를 해야 한다.
소방시설공사업계가 분리발주를 주장하는 배경은 건설산업기본법(건산법)에서 찾을 수 있다. 건산법 제2조에서는 전기공사ㆍ정보통신공사ㆍ소방시설공사ㆍ문화재수리공사 등 4개 공종은 건설공사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되어 있다. 때문에 소방시설공사도 전기공사ㆍ정보통신공사와 마찬가지로 분리발주해야 한다는 논리다.
사실 굳이 조례가 아니어도 건산법에 따라 소방시설공사는 분리발주가 가능하다. 발주자가 여러 부분을 고려해 선택할 수 있는 사항이다.
그러나 분리발주 의무화는 다른 문제다. 일괄적으로 분리발주할 경우 심각한 부작용이 뒤따른다는 것이 대한건설협회의 견해다.
우선 국민안전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비근한 예가 최근 발생한 잠원동 철거물 붕괴사고다. 여러 안전조치가 미흡한 탓도 있었지만, 민간 발주자가 철거공사를 전문업체에 따로 발주하면서 근본적인 문제가 잉태됐다는 설명이다.
산업안전보건법상 공사금액에 따라 안전보건 관리책임자ㆍ총괄책임자ㆍ안전관리자 등을 배치하도록 되어 있는데, 20억원 미만의 소규모 공사에는 배치의무가 배제된다. 통합발주 시 배치되는 안전관리자가 배제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소방시설공사의 경우 건설공사와 시공 연계성이 높아 분리발주했을 때 사고가 발생하면 책임소재가 불분명하다. 실제 2014년 5월 고양종합터미널 화재사건 당시 검찰에서는 ‘자격과 경험이 없는 업체에 대수선공사, 가스배관공사, 소방시설공사를 각각 분리발주해 화재발생 위험을 가중시켰다’라는 수사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분리발주 공종이 확대되면 그만큼 비용이 늘어나는 데다, 다단계 불법하도급이 양산돼 품질은 오히려 떨어진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통합발주 시 한 번에 입찰할 것을 2차례로 나누어 입찰해야 할뿐더러, 해당 공종의 전문업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초저가 다단계 불법하도급이 판을 칠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런 이유로 민주노총에서도 “결국, 피해는 건설근로자들에게 돌아간다”면서 분리발주 법제화에 반대의견을 나타내기도 했다.
무엇보다 효율성 저하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여러 공종이 복합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시설물 공사에서 의도적인 분리발주는 공사 수행의 효율성을 오히려 떨어뜨릴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건협 관계자는 “분리발주 시 효율성 저하는 기획재정부나 국토교통부, 행정안전부 등 정부도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라며 “분리발주 의무화는 4차 산업혁명의 융ㆍ복합 추세 및 통합발주가 원칙인 미국ㆍ영국ㆍ일본 등 주요 선진국 사례를 면밀히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회훈기자 hoo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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