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밥 30여년 "나는 영원한 현역"
공무원·기업 대변인 경험 이석준 동우개발 부사장
"과거 공무원을 평생의 천직으로 알았다가 어느 순간에 지역건설업계 목소리를 대변하는 나를 발견했죠. 지금은 또다른 변화를 위해 세상과 당당하게 맞서고 있습니다."
요즘 세대에서 '더이상의 평생 직장은 없다. 다만 평생의 직업만이 있을 뿐'이라는 말이 있다. 인천의 토종업체 동우개발의 이석준(64) 부사장에 딱 들어맞는 비유다. 그는 33년을 공직에서, 이후 4년을 민간협회에 몸 담았다가, 환갑을 넘겨 기업체 임원으로 변신에 또 변신을 거듭했다.
인생에서 현재를 제2의 전성기라 부르는 이 부사장은 황해도가 고향이다. 6·25 전쟁통에 인천과 인연을 맺었단다. 그때가 세살이었다. 무척 어렸지만 너무도 힘든 기억은 생생하다. 부모님과 형, 누나 그리고 본인까지 이렇게 다섯 식구의 첫 정착지는 바로 동구의 난민수용소였다. 송현동 19번지로 기억했다.
그는 당시를 "힘든 형편으로 하루 세끼를 고민하는 건 사치였다. 조그만 전세방에 살면서 안해 본 일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송현초교를 나와 중학교로 진학은 포기했다. 넉넉지 않았던 가정형편 때문이다. 그렇지만 학업에 대한 열정을 가져 고등학교 입학 자격 검정고시를 치렀고, 인천기계공고에 당당히 들어갔다. 1966년 7월 고교를 졸업하기 전 직장행을 택했다. 현 대성목재다. 1970년 군에 입대하기 앞서 실습생으로 취업, 중구 월미도 공장부지를 매립했고 준공의 결실을 경험했다.
이 부사장은 제대 후 공직에 투신했는데, 송현3동 사무장을 역임한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1973년 9급 공채로 남구수도사업소에서 시작, 중구·동구·남동구·서구 등 거치지 않은 곳이 없다.
그렇게 공무원으로 33년을 지내고 현직에서 물러나기 직전 대한건설협회 인천시회에서 자문역을 맡아달라는 제안이 왔다. 그간 실무에서 쌓은 경력을 전수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곳에서 그는 정해진 임기 3년에 협회 요청으로 1년을 연장, 근무했다.
여기가 마지막이 아니었다. 건설협회 임기 만료를 앞두고 현재 동우개발 고위 임원으로부터 한 통의 연락이 왔다. 부사장직을 제안하며 동우개발이 인천을 대표하는 1군 기업으로 성장하는데 힘을 모으자는 내용이었다. 그는 흔쾌히 수락했다. 개인 욕심이 아닌, 지역건설업의 발전을 위한 결심이었다.
최근 일곱살 손녀 딸 보는 재미에 푹 빠졌다는 이 부사장은 "동우가 향토 업체이면서 지역내에서는 아직 자리매김하지 못했다. 앞으로 이를 보완하는데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강승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