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이앤씨 이어 DL건설
대표·임원·현장소장 줄사퇴
李대통령, 산재 ‘직보’ 지시 압박
건설업계 또다른 족쇄로 작용
“생존 걸고 줄타기 하는 심정”
[대한경제=박흥순 기자] 건설현장이 극심한 중대재해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잇단 중대재해로 인해 포스코이앤씨의 CEO(최고경영자)가 교체된 데 이어 DL건설은 중대재해 발생을 이유로 대표를 비롯한 임원, 현장소장 등이 일제히 사의를 나타내면서 중대재해가 기업의 생존을 위협하는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DL건설의 경기 의정부시 아파트 신축 공사현장에서 근로자가 추락해 사망한 사고의 책임을 지고 강윤호 대표와 하정민 최고안전책임자(CSO)를 비롯한 임원진과 팀장, 현장소장까지 전원 사표를 제출했다.
이는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른 수사나 사법적 판단이 내려지기도 전에 경영진이 책임을 지고 물러난 이례적인 결정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눈과 귀가 실시간으로 건설현장을 향하고 있다는 압박감이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DL건설은 사고 직후 모든 현장의 작업을 즉시 중단하고, 전사 긴급 안전점검에 착수했다.
앞서 포스코이앤씨도 지난 4일 광명-서울 고속도로 연장 공사 현장에서 외국인 근로자가 감전 추정 사고로 의식불명에 빠지자, 바로 다음날 정희민 전 사장이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포스코이앤씨는 올 들어 이미 네 차례 사망사고가 발생해 이 대통령으로부터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는 강도 높은 경고를 받은 상태였다.
DL건설 경영진의 선제적 사퇴는 이 대통령이 취임 첫 휴가에서 복귀하자마자 내놓은 지시와 직결된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재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르게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과거에는 사고 발생 후 수습과 보고, 대책 마련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제는 사고 발생 사실 그 자체가 최고경영자의 거취를 결정하는 ‘트리거’가 된 셈이다.
이번 대통령 직보 지시는 단순한 절차 변경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이는 건설현장 산재를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정부 최고위 의사결정권자가 직접 사안을 챙기겠다는 의지를 보인 만큼 모든 건설사는 사실상 ‘국가 수준의 실시간 모니터링 체계’아래 놓이게 됐다.
이 대통령의 직접적인 관심은 건설업계엔 보이지 않는 족쇄로 작용하고 있다. 산재사고라는 민감한 사안이 국정 최고 결정권자까지 즉시 전달된다는 점이 기업의 부담을 극도로 높이고 있다.
이 같은 압박이 되레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산재의 원인을 분석하는 냉정한 판단보다 최고경영자의 즉각적인 사퇴처럼 책임을 회피하려는 성급한 결정이 우선시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건설현장 안전관리자는 “이제 건설현장의 안전 성적표가 대통령 책상 위에 실시간으로 올라가게 될 것”이라며 “사고 발생 자체가 경영 실패로 간주되기 때문에 현장은 매일 기업의 존폐를 걸고 줄타기를 하는 심정”이라고 말했다.
박흥순 기자 soo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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