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정금액의 12%가량 삭감 후 협상
물가보정 기산일도 1년 이상 '시차'
설계비 손실 감수, 사업 포기 고려
[대한경제=최지희 기자] 기술형입찰 유찰률이 70%에 육박하며 수의계약 전환이 크게 늘어난 가운데 경쟁입찰을 전제로 마련된 계약법의 허점이 노출되며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부가 명확한 지침도 없이 국책사업 진행을 위해 수의계약 체결만 독려하다 보니, 수의시담에 착수한 건설사들이 가격 협상 단계에서부터 난색을 표하는 모습이다. 설계비 손실을 감수하고라도 사업을 포기하는 이례적인 상황이 속출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17일 〈대한경제〉가 올해 단독 응찰로 유찰된 주요 기술형입찰 17건의 수의계약 현황을 확인한 결과, 수의시담에 착수한 일부 건설사들이 사업성 부족을 이유로 계약 포기까지 검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의계약 전환 시 가격 협상기준에 따라 추정금액에서 약 12%를 삭감하고 협상을 시작하는 가운데 물가보정 기산일까지 1년 이상 미뤄지며 역차별이 발생하는 탓이다. 애초에 공사비가 부족해 유찰된 사업인데, 주먹구구식 계약 방식의 허점을 악용한 발주기관의 갑질 행정까지 더해지며 자칫 수의계약 진행 중 사업이 좌초하는 초유의 상황도 예상된다.
수의시담을 진행 중인 A사 관계자는 “수의계약 전환 시 가격협상 기준을 최근 1년간 발주된 유사 공종의 종합심사ㆍ평가낙찰제의 평균 낙찰률을 적용하는데 88% 정도”라며, “여기에 설계 보정점수가 들어가 추가 삭감이 이뤄진다. 최소 12%를 깎고 (협상을) 시작하는 건데 심지어 조달청 등은 유사 공종으로 선택한 공사를 공개하지 않아 건설사가 산정한 협상 가격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토로했다.
B사 역시 같은 문제를 지적하며 “가격 협상 기준을 바꿀 수 없다면, 최소한 물가보정 기산일이라도 경쟁입찰 수준으로 형평성을 확보해줄 것을 건의했는데 아직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경영진에서 사업 포기도 검토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전했다.
국토교통부는 연내 ‘공공공사 공사비 현실화 방안’을 내놓기 위해 지난 6월부터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다. 용역에는 수의계약 관련 규정 개정 및 물가보정 기준시점 합리화 방안도 포함됐으나, 상반기 재정 100조원 적자 사태 이후 긴축 모드로 돌아선 기획재정부를 설득하는 작업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영준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미래산업정책연구실장은 “최근 단독 응찰에 따른 수의계약 전환율이 높아지며 단군 이래 최대 토목공사로 꼽히는 ‘가덕도 신공항 부지조성공사’까지 수의 협상이 진행 중”이라며, “계약예규와 총사업비 관리지침 등을 개정해 합리적인 계약 방식을 정립하지 않으면 국책사업이 수의계약 단계에서 표류해 더 큰 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지희 기자 jh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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