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짐진 발주처, 곪아가는 현장

자재價 인플레, 건설사 숨통 옥죄
발주처는 적정공사비 산정 '외면'
적자시공 누적...시장왜곡 심화


[대한경제=최지희 기자]  건설산업 분야의 만성화된 인플레이션, 이른바 컨플레이션(con-flation)의 상시화는 현장의 실행률 초과로 드러난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최근 준공 현장 중 무작위로 92건을 선정해 평균 실행률을 조사한 결과, 평균 95.2%가 나왔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중견 이상 건설사들이 주로 수주하는 300억원 이상 현장(10건)에서 실행률은 96.1%인 반면 중소 건설사들의 몫인 100억원 이상 300억원 미만(23건)은 100.8%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특히 공사비 상승분의 책임을 건설사가 오롯이 져야 하는 턴키(설계ㆍ시공 일괄입찰)에서의 실행률이 120%를 넘나드는 현장도 속출하고 있다.

A사 관계자는 “중앙정부와 지역에서 발주한 주요 국책사업 실행률이 대부분 110∼120%에 달한다. 건설사 모두 쉬쉬하고 있지만 적자 사업이 누적되고 있어 준공 시점이 돌아오는 2∼3년 뒤 상당한 후폭풍이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적정 공사비’에 대한 발주자의 인식이 근본적으로 변화할 시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전영준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미래산업정책실장은 “시멘트와 철근 등 건설사가 사용하는 주요 자재는 공급자 주도로 가격이 결정되는데 건설사는 스스로 가격을 결정하지 못하는 덫에 빠져 있다 보니 자재가격 인플레이션이 건설사의 숨통을 죌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이 경우 시장 여건을 반영한 과학적인 공사비 산정 체계와 공사비를 왜곡하지 않는 합리적 입·낙찰 제도가 필요한데 정부의 입장이 대단히 소극적이다 보니 시장 왜곡 현상이 장기간 누적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발주자의 인식 전환을 유도하기 위한 ‘건설사의 반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건설산업에 특이점이 온 만큼 현재의 불합리한 산업 구조를 이대로 끌고 가면 산업 생태계 전반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이복남 서울대학교 건설환경종합연구소 교수는 “과거 ‘누이 좋고 매부 좋고’식의 침묵으로 일관했던 문제들이 글로벌 환경 변화로 일시에 불거지며 산업체 경영 손실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는데도 정부와 발주기관이 남의 일처럼 방관하고 있다”며, “극단적인 제도의 불합리함 앞에서 더는 침묵하면 안 된다. 현재와 미래 세대를 위해 기술력 있는 소수의 리더 그룹이 산업계의 반란을 이끌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최지희 기자 jh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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