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경제=임성엽 기자] 건설현장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한 경우, 공동도급사는 영업정지 처분 대상이 아니라는 판단이 나왔다. 대표주관사가 아닌, 구성원 회사에까지 동일한 영업정지 처분을 하는 것은 무리라는 법원 판결이다.
25일 관계기관 등에 따르면 수원지방법원은 최근 원고 미래도시건설과 이에스아이가 피고 경기도를 상대로 제기한 영업정지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앞서 지난 2016년 6월, 국가철도공단이 발주한 진접선(당고개-진접) 복선전철 제4공구 건설공사 현장에서 폭발사고가 발생, 4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낙찰금액 1765억원 규모의 이 사업에는 포스코건설이 지분 50%로 대표사를 맡았고 한양(15%), 현대엔지니어링(10%), 미래도시건설(10%), 이에스아이(5%), 오렌지이앤씨(5%), 포스코엔지니어링(5%)이 공동도급사를 구성했다.
고용노동부는 포스코건설은 물론 공동도급 건설사의 본점 소재지 지자체에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중대재해를 발생시킨 행위에 대해 영업정지 처분을 요청했다.
이에 공동도급사들은 구성원사로 참여한 입찰에 대표사와 동일한 영업정지 2개월을 처분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영업정지 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수원지방법원이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 이유는 최근 진행된 형사소송에 따른 결과다. 앞선 형사소송에서 법원은 컨소시엄 대표사인 포스코건설에만 5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했고, 수원지법도 형사소송에서 공동도급사들의 혐의 없음이 밝혀졌으니 영업정지를 처분할 근거가 없다고 판시했다.
[해설] 정부 중대재해 대응방식에 제동 건 법원…파급 효과는
중대재해 건설현장의 공동도급사에 대한 영업정지 처분이 부당하다는 이번 수원지법 판결이 정식 판례로 확정된다면 앞으로 중대재해처벌 관련 각종 사건 사고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특히 이번 판결은 규제와 처벌 일변도로 대해온 정부의 중대재해 대응방식에 법원이 제동을 걸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25일 건설업계와 경기도 등에 따르면 진접선(당고개-진접) 복선전철 4공구 사망사고에 따른 영업정지 처분 취소소송은 수원지법 판결을 시작으로 줄줄이 1심이 진행 중이다.
이 사업 공동도급사인 한양(지분 15%)은 지난 2021년 3월 인천시로부터 영업정지 2개월 처분을 받았는데, 인천지법에서 취소소송을 맡고 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서울시를 대상으로 서울행정법원에서 1심을 진행하고 있다. 오렌지이앤씨도 경기도의 영업정지 처분에 반발, 수원지법에서 1심을 진행 중이다.
수원지법에서 미래도시건설과 이에스아이 등 원고의 손을 들어준 만큼, 이들 3건의 판결도 원고 승소 가능성이 커졌다.
공공건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영업정지 처분취소 소송을 제기한들 사망사고는 사실상 100% 원고 패소가 주류를 이뤘는데 정말 이례적인 법원 판결이 나온 것”이라며 “그만큼 중대재해처벌법 자체가 졸속으로 입법한 증거로 볼 수도 있다. 공동도급에 대한 명확한 개념과 정의 없이 처벌 법령만 덜컥 만들었기 때문에 법원에서도 정부의 행정처분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공공건설 업계에선 공동이행방식이라 하더라도, 도급 지분율대로 공구를 분할해 시공했으면 중대재해가 발생한 담당 건설사만 법적 책임을 지고 나머지 건설사는 제외하는 게 상식적이란 설명이다.
이번 판결이 의미가 또 다른 이유는 삼성물산이나 HDC현대산업개발 등 기술형 입찰 대형공사에 참여하지 않는 건설사들이 공동도급사로 참여할 길이 열렸다는 부분이다. 실제 시공능력평가액 기준 10대 대형건설사들이 대형공사 입찰을 꺼리는 결정적인 원인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이기 때문이다. 중대재해가 발생해도 공동도급사를 처벌에서 제외할 경우, 실적이 풍부한 대형건설사 입장에선 대표사가 아닌 공동도급사 참여는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한 10대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조달청의 10대사 공동도급 금지 규정이 다음 달 1일부터 풀리지만, 사실 중대재해 처벌이 두려워 기술형 입찰 참여는 검토하지 않았다”며 “공동도급사가 중대재해 처벌에서 확실하게 제외된다면 기술형 입찰 복귀는 충분히 검토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수원지법 판결에 경기도는 즉각 항소한다는 방침을 수립했다. 진접선 복선전철 4공구 입찰방식은 분담이행이 아닌, 공동이행 방식이기 때문에 대표사는 물론 공동도급사도 대표사에 준하는 안전관리 의무가 부여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또한, 원고 승소의 전제조건이 된 ‘형사소송’ 결과가 대법원에서 바뀔 여지도 있어 경기도가 항소 후 승소할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보고 있다.
경기도 관계자는 “공동이행 방식은 단지 퍼센티지로 지분율만 나눴을 뿐 공사를 함께 진행한 것으로, 공동도급사 또한 중대재해 발생 시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본다”며 “고용노동부 조사를 마치고 우리 경기도에 영업정지 처분을 요청한 사항이기 때문에 경기도의 영업정지 처분은 정당한 행정행위”라고 말했다.
임성엽 기자 starlea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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