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운 부국장 = 조달청이 10대사 기술형입찰 공동도급 금지 규제 완화안을 발표한 지 2주가량 시간이 지났습니다. 10위 권 밖 중견건설사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임성엽 기자 = 중견건설사들은 2008년 이 제도 수립 전의 ‘악몽’이 떠오른다는 게 한결같은 반응입니다. 10대 대형사 간 공동수급체를 구성하는 것을 금지하기 전에는 같은 종합건설회사임에도, 중견사 기술형입찰 담당 직원들은 ‘도장’ 받으러 다니는 게 주 업무였다고 하네요.
신= 도장이요?
채희찬 부장 = 네 그렇습니다. 도장이란 공동수급체 구성 서류에 날인하는 것을 말합니다. 기술형입찰에서 10대사 공동도급 구성 제한이 없었을 시절엔, 중견건설사는 마치 대형건설사의 하도급업체처럼 대형건설사가 불러주는 지분율대로 공동도급이라도 시장 참여를 위해서 도장을 받으러 다녔다고 합니다. 지분율도 상위 10대 대형사 간 지분 논의를 끝내고 많아야 10% 정도의 지분만 받을 수 있었다고 하네요.
임 = 15년 전엔 중견건설사에 이런 상황은 당연했다고 합니다. 시장논리로 냉정하게 중견건설사가 대표주관을 맡는다는 게 불가능했기 때문이지요. 예를 들어서, 현대건설과 삼성물산이 같은 편이 되면, 10위 권 밖 중견건설사는 공동수급체를 구성하는 게 불가능했다고 합니다. 10대사의 아성을 깨려고 대표사로 출전을 해도, 중견건설사 편에 설 회사가 없었기 때문이지요. 기술형입찰은 다른 공공건설 입찰과는 확연히 다른 입찰방식입니다. 건설사가 먼저 비용을 ‘투자’한 뒤, 심의 결과에 따라 수주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입니다.
설계심의를 준비하면서 통상 수십억원의 비용을 투자하는데, 심의에서 패배할 땐 설계보상비를 받더라도, 지분율대로 수억원 많게는 수십억원의 손실을 볼 수 있습니다. 제도 도입 전에는 누가 보더라도, 패배가 예상되는 팀에 설 공동도급사는 없었겠지요.
채 = 중견건설사들이 답답함을 토로하는 부분이 바로 이 대목입니다. 이미 15년 전에 노출된 문제점들을 바로잡기 위해 10대사 공동도급을 금지했는데, 제도 폐지 시 예상되는 부작용이 자명한데, 왜 섣불리 없애려 하느냐는 것입니다. 중견건설사들도 회사의 기술적 역량, 본인 회사의 규모와 보유 실적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7조원 규모의‘가덕도 신공항 부지조성공사’ 등 특수한 상황에서 국가적인 명운을 걸고 추진해야 할 국책 대형공사는 10대사 공동도급 금지 제한을 푸는 것에 찬성입니다. 하지만, 이미 과거에 경험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제도를 보완하지 않고 곧바로 폐지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입장입니다.
임 = 현재 기술제안서, 심의 준비, 서류 등 기술형입찰에서 무결점의 능력을 보이게 된 것도 10대사 공동도급 금지 때문이라는 게 중견건설사 관계자의 설명입니다. 10대사 간 공동도급을 금지하면서 금호건설과 HJ중공업은 항공 특화, 코오롱글로벌은 수자원, 태영건설은 환경, 계룡건설은 건축 등으로 기술형입찰 시장에서 특화 분야를 만들어 냈고, 성장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이들 중견건설사는 최근엔 철도 기술형입찰 시장에 도전해 사상 처음으로 철도 턴키를 품에 안는 등, 기술형입찰 공종을 다각화하면서 지속적으로 성장해나가고 있습니다. 제도를 폐지하는 순간, 지금껏 쌓아온 기술역량은 모래성처럼 사라질 것이라는 게 중견건설업계의 우려입니다.
채 = 실제로, 벌써 중견건설사 일부에선 기술형입찰 인력 감축 얘기가 돌고 있습니다. 지금은 중견건설사 기술형입찰 담당 인원만 30명을 넘어서는 대규모 조직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이 정도 조직을 운영하는 이유는 전문성 확보 때문이었습니다. 경쟁에서 살아남고자 제안서 작성 담당자, 검토 담당자, 마케팅 담당자 등 각 분야에서 특화된 인력이 필요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10대사 공동도급 금지가 풀려 예전처럼 ‘도장’만 받는 신세로 다시 전락한다면 이 많은 인력이 필요 없다는 설명입니다. 실제 2000년대 초반 중견건설사 기술형입찰 인력은 임원, 부장, 실무자 각 1명씩 총 3명밖에 없었다고 하네요.
임성엽 기자 starleaf@
〈ⓒ 대한경제신문(www.dnews.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