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찰 브로커 조사 중에 전격 전환
8개사 압수수색...5년치 자료 확보
제도 도입당시부터 '균형가격' 문제
과도한 사전영업 활동 요구 비판도
"종심제가 유사 담합제도로 전락"
[대한경제=최지희 기자] 공정거래위원회의 한국토지주택공사(LH)‘입찰 브로커’적발 조사가 약 27조원 규모‘입찰 담합’조사로 전환됐다. 공정위 칼끝은 2021년부터 LH가 종합심사낙찰제(이하 종심제) 방식을 적용해 발주한 공공주택 사업을 2건 이상 수주한 약 40여개 건설사로 향했다.
12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11일부터 매일 4개사씩 총 8개 건설사를 조사했다. 모두 LH 종심제에서 활동하는 1군에 속하는 중견 건설사들이다. 지난달 말 사흘간 6개 건설사를 압수수색한 데 이어, 2주 만에 활동을 재개한 공정위는 이번에는 조사 범위를 크게 확대한 것으로 전해졌다.
1차 조사 때만 해도 작년 LH 종심제 시장에서 낙찰하한율 상승을 유도한 ‘입찰 브로커’활동에 초점을 맞췄지만, 2차 조사에서는 종심제 투찰금액을 업체끼리 사전 공유한 정황 확보에 나선 것이다. ‘균형가격’을 맞추고자 건설사끼리 사전에 각사 투찰금액 정보를 공유하거나, 그룹을 형성한 영업활동을 유사 담합행위로 간주하겠다는 취지다.
2016년 도입된 종심제는 입찰에 참여한 기업들의 투찰금액 평균인 ‘균형가격’에 가장 근접한 금액을 써내는 건설사에 최고점을 부여한다. 저가 경쟁을 억제하고 기술과 가격의 균형을 유도하고자 도입됐지만, 업계에서는 과도한 사전 영업 활동을 요구한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아왔다.
A사 관계자는 “제도 도입 당시부터 ‘균형가격’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건설사들이 많았다”라며, “각사 적정이윤에 상관없이 다른 건설사가 써낸 투찰금액을 최대한 많이 알아내야만 낙찰 가능성이 커지는 제도인데, 당연히 견적 및 업무 담당자끼리 인맥을 통해 ‘이번에 너희 회사는 얼마를 쓰냐’라고 물어볼 수 밖에 없는 제도 아니냐”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공정위가 건설사들의 사전 영업 활동을 유사 담합행위로 간주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정위가 금지하는 9가지 카르텔 유형에는 가격담합과 거래조건담합, 입찰담합 외에 기타ㆍ정보교환담합이 속한다. 입찰 전 업체끼리 사전 투찰금액 정보를 공유해 입찰 가능성을 높이는 것을 정보교환에 따른 경쟁제한으로 간주하는 셈이다. 이 경우 지난 10년간 종심제 시장에서 활동한 건설사들은 공정위의 칼끝을 피하기 어렵다.
공정위는 2021년부터 LH가 발주한 종심제 사업을 전수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LH의 2021년 종심제 발주규모는 약 9조7000억원으로, 2022년 9조9000억원, 2023년 7조2000억원, 2024년 12조5000억원에 달한다.
특히 작년 공공주택 분야 발주규모는 8조7000억원에 달했다. 매년 종심제 발주 금액 중 약 70%가 공공주택 부문인 점을 감안하면, 공정위 조사 대상에 오른 사업 규모는 대략 27조5000억원으로 추정된다.
B사 관계자는 “‘4대강 살리기 사업’담합 조사 이후 역대 최대 규모 건설업계 입찰 담합 조사로 보인다”라며, “담합으로 확정될 경우 입찰금액의 10%를 과징금으로 내야 하고, LH는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업계 일부에서는 LH와 조달청 간 갈등에 애꿎은 업체들이 피해를 본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C사 관계자는 “작년 LH가 입찰 브로커에 의한 교란 행위로 낙찰하한율이 지나치게 올라간 것으로 의심되니 조사를 해 달라고 조달청에 요청했는데 (조달청이)이를 제대로 수용해 주지 않으며 LH가 공정위에 조사를 의뢰한 것 아니냐”이라며, “기관 간 업무 협조 미비와 갈등으로 인해 10년간 운용한 종심제가 유사 담합 입찰 제도로 전락했다. 두 기관들 다툼 때문에 ‘입찰 브로커’조사가 담합 조사로 변질됐으니 어처구니 없는 노릇”이라고 토로했다.
최지희 기자 jh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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