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경제=임성엽 기자] 조달청이 앞장서서 ‘기술형입찰 유찰 대응방안’을 마련키로 한 이유는 최근 기술형입찰 유찰로 대형 국책사업들의 지연이 심각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14일 조달청이 최근 3년간 기술형입찰 대형공사 유찰 현황을 파악한 결과, 총 59건 사업 중 무려 24건이 유찰됐다. 유찰 비율이 40.7%에 달했다.

 

특히 해가 지날수록 유찰률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지난 2020년 16.7%에 그쳤던 유찰률은 지난 2021년 50%로 급증하더니 지난해엔 64.7%를 기록했다. 지난해 발주한 17건의 기술형 입찰 중 절반이 넘는 11건이 유찰(64.7%) 됐다.

 

더욱 심각한 대목은 무응찰 유찰이 확대된 부분이다. 최근 3년간 무응찰 유찰은 7건으로 집계됐는데, 지난해에만 5건이 무응찰 유찰로 처리됐다. 지난해 유찰된 공사 11건 중 절반에 달하는 5건이 단 한 곳도 입찰에 참여하지 않아 유찰됐다.

조달청은 기술형입찰의 유찰 원인을 공사비로 판단했다. 조달청 관계자는 “기술형입찰 유찰은 사업비 책정부터 공사 발주까지 통상 2년 이상 소요돼 물가변동분이 공사비에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는 것이 주된 원인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는 조달청 스스로 공사비에 대한 ‘시각’ 자체를 전환했다는 평가다. 그도 그럴 것이, 공사비와 관련한 건설업계와 발주기간 간 시각차가 현저하다는 점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포스트 코로나와 더불어 우크라이나, 러시아 간 전쟁으로 건설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건설업계가 주장하는 ‘공사비 부족’을 조달청에서도 심각하게 인지하게 됐다는 분석이다.

한 건설사 공공업무부장은 “건설사에서 ‘원가율이 좋지 않다’고 발주기관에 얘기하면 예전엔 단순히 더 많은 이익을 보기 위한, 우는소리로 생각하고 ‘입찰에 참여하지 말라’는 답변이 돌아왔다”며 “이번 조달청의 대책을 보면, 조달청 자체적으로도 이제 건설업계에서 주장해 온 ‘적자 시공’, ‘원가율 악화’를 진심으로 인정했다고 평가된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조달청의 ‘기술형입찰 대응방안’과 관련, 조달청 차원에서 추진할 최선의 정책을 낸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실제 이번 대응방안 마련에는 이종욱 조달청장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게 조달청 내부의 설명이다. 이 청장은 부임 후 조달청 내 시설사업국 역할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공사비 산정 전문기관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하면서 시설국의 기능 강화를 주문한 바 있다.

 

조달청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이 청장이 ‘시설사업국이 조달청 내에서도 중추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고 전했다”며 “기술형입찰을 포함한 공공공사가 활성화되도록 각종 가이드라인도 직접 마련해줬으며, 기획재정부 고위관료 출신인 이점을 활용해 국토교통부와 기재부 협의도 직접 진행하거나 조언해주는 등 앞장서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업계에서는 조달청의 대응방안이 실효성을 얻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제도의 실질적인 작동을 꼽았다. 당장 국가철도공단의 남부내륙철도 10공구는 공사비가 2166억원으로 설정된 탓에 유찰된 바 있다. 이 사업 유찰의 원인은 물가변동분이 공사비에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결과라는 게 건설업계의 판단이다.

이달 8일엔 턴키 방식의 추정금액 기준 2943억원 규모의 ‘부산항 진해신항 남방파제(1단계) 축조공사’도 현대건설 단독입찰로 유찰된 바 있다. 곧 있을 재공고에도 현대건설이 단독입찰 할 경우엔, 조달청이 마련한 대응방안대로라면 현대건설 컨소시엄과 수의계약을 추진하거나, 공사비를 증액하거나, 설계시공 분리입찰로 입찰방식을 전환해야 한다.

또 다른 건설업계 관계자는 “조달청이 대형 사회간접자본(SOC) 확충 지연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입고 있다는 점을 피부로 느끼기 시작한 것으로 생각한다”며 “전력을 기울여 좋은 제도를 마련한 만큼, 제도를 철저히 지켜나가야 하는 게 앞으로 관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성엽 기자 starlea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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