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단지 주민들 “녹물에 비새는 집도 많아…재건축 추진 시급”

 

국토교통부가 지난 2018년 강화한 재건축 안전진단 절차. 

 

 

# “배관이 오래돼 녹물이 나오는 세대가 많고 그나마도 배관이 터지는 일이 빈발합니다. 겨울에는 난방을 해도 입에서 입김이 나와요. 누수에 곰팡이도 심각하고, 차 댈 곳이 없어서 하루하루가 주차 전쟁이구요. 신축 아파트의 첨단 설비, 쾌적한 평면설계나 공원녹지는 다른 세상 이야기입니다. 당장 무너질 가능성만 없으면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계속 살아도 상관 없다는 건가요?” (서울 상계 시영아파트 주민)

서울시 내 노후 아파트 단지들이 ‘안전진단’이라는 높은 벽에 가로막혀 열악한 주거 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안전진단 규제가 강화된 지 3년여 동안 서울에서 안전진단을 통과한 아파트 단지가 5곳에 그칠 만큼 재건축 사업이 ‘난공불락’이 되고 있다.

24일 서울시 등에 따르면, 지난 2018년 2월 안전진단 규제가 강화된 이후 △양천구 목동 6단지 △마포구 성산시영 △도봉구 삼한 △서초구 방배삼호 △여의도 목화아파트 등 5개 단지만 재건축 안전진단을 통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소 수백 곳에 이르는 재건축 대상 단지 주민들이 안전진단에 발목 잡혀 삶의 질을 훼손당하고 있다는 뜻이다.

현행 안전진단 절차는 2018년과 지난해 두 차례에 걸쳐 강화된 것이다. 정부는 2018년 2월 재건축 안전진단 과정에서 ‘구조 안전성’ 비중을 기존 20%에서 50%로 상향 조정하고 주차공간이나 배관 시설 등을 반영하는 ‘주거환경’을 종전 40%에서 15%로 대폭 낮췄다. 주거 환경이 열악하더라도 아파트가 무너질 위험만 없다면 안전진단을 통과시키지 않겠다는 뜻이다.

게다가 지난해에는 6·17대책을 통해 2차 정밀안전진단에서 현장조사를 의무화해 안전진단의 벽이 더욱 높아졌다.

현재 양천구 목동과 노원구 상계동, 강남구 압구정동 등 재건축 연한이 넘는 단지가 속출하면서 안전진단을 서두르는 사업지가 쏟아지고 있지만 2차 정밀안전진단을 통과하지 못하고 고배를 마신 단지가 속출하기도 했다.

주민들은 안전진단 규제 완화를 요구하며 반발하고 있다. 서울의 한 재건축단지 추진위원회 관계자는 “재건축을 마친 단지 주민들은 첨단 시설과 쾌적한 주거환경을 누리고 있는데, 대다수 단지 주민들이 녹물이 나오고 비가 새는 환경을 감내하고 있으니 울화통이 치민다”고 호소했다.

전문가들도 삶의 질 향상을 위해 구조 안정성 비중을 낮추고 주거 환경 비중을 높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대한부동산학회 회장인 서진형 경인여자대학교 교수는 “현재 안전진단 규정은 구조에 너무 치우쳐 있다”며 “한 부분만 강조하다 보면 실질적으로 주거 환경악화로 이어질 수 있어 평가 영역을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최중현기자 hig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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