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의 완성은 ‘발주제도 개편적정공사비 보장’

낙찰제 혁신 골든타임 놓치면

건설산업 패러다임 전환 불가능

 


2018년 최악의 암흑기를 맞았던 건설산업에 한줄기 서광이 비치고 있다. 축소지향적으로 일관했던 정부의 건설정책 기조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고, 오랜 숙원이었던 적정 공기와 적정 공사비 확보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특히, 올해는 40년 업역 경계를 허무는 생산체계 개편 등 건설산업의 혁신방안이 본격 추진된다. 건설산업 혁신은 기술과 생산구조, 시장 질서, 일자리 등 크게 4개 축으로 나뉜다. 지속가능한 성장과 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한 기술 혁신과 칸막이식 업역 규제를 탈피한 생산성 극대화가 핵심이다. 여기에 페이퍼컴퍼니 등 부실기업을 털어내고 공사비 삭감 등 불공정 관행을 근절함으로써 시장 질서를 바로 세우는 것도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이를 위해서는 업역 규제만큼이나 오랜 시간 업계와 시장을 짓눌러 왔던 계약제도 혁신이 필수다. 부실기업이 공사를 낙찰받을 수 있는 입ㆍ낙찰 제도를 그대로 방치하거나 적정 공기와 공사비를 보장받을 수 없는 환경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건설산업의 패러다임 전환은 불가능하다.

정부와 전문가들이 건설산업 혁신을 위한 ‘마지막 퍼즐’로 발주제도 개편과 적정 공사비 보장을 지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만, 관련 법 개정 등 탄력을 받고 있는 생산체계 개편과 비교하면 계약제도 혁신은 속도가 더딘 편이다. 당초 정부는 지난해 9월까지 국가계약제도 혁신방안을 내놓기로 했으나 아직 막바지 검토를 끝내지 못했다. 늦어도 3∼4월까지는 구체적인 후속조치 계획을 마련해야 2020년 예산안 편성 및 기금운용 계획안 작성지침부터 단계적으로 반영할 수 있다.

경제활력 제고를 최우선으로 하는 ‘2019년 경제정책 방향’에도 계약제도 혁신과제가 담겼다. 정부는 과도한 저가낙찰 방지를 위해 가격평가 기준을 개선하고 기술 변별력 강화를 골자로 발주제도를 뜯어고치기로 했다. 또 예정가격 산정부터 간접비 등 추가비용 분담에 이르기까지, 전 생애 주기에 걸쳐 적정 공사비를 책정, 지급하기로 했다.

이에 앞서 정부는 착공 초기 준비기간과 준공 후 정리기간 등까지 반영한 공공공사 공기 산정기준(안)도 마련했다. 올 3월부터는 새로운 공기 산정 방식이 도입될 전망이다.

전문가 및 건설업계는 대규모 SOC 예비타당성조사 면제와 대형 민자, 민간프로젝트 조기 착공 등 정부의 건설정책 기조 전환과 더불어 적정 공기ㆍ적정 공사비 보장, 그리고 불공정 해소방안 등이 차질없이 뒷받침된다면 건설업은 다시 한 번 우리 경제의 선봉장이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반대로, 예산이나 업무 관행 등과 같은 낡은 ‘틀’에서 벗어나지 못해 발주제도 개편을 또다시 미루거나 적정 공기ㆍ공사비 보장을 주저한다면, 혁신은 고사하고 건설투자 위축으로 인한 경기침체만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저가경쟁 방지ㆍ운찰제 차단 新발주시스템 구축

생산체계 개편은 1차 거름망… 입ㆍ낙찰 과정에서 한 번 더 걸러야

페이퍼ㆍ부실업체 차단하면 부실시공ㆍ안전사고 크게 감소


발주제도 개편은 저가경쟁을 방지하고 ‘운찰제’ 성격의 입ㆍ낙찰 제도를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운찰제란 기술력이나 수행능력과 관계없이 사실상 투찰가에 따라 당첨되듯 낙찰자가 결정되는 것을 말한다. 이는 페이퍼컴퍼니 등 부실업체가 기생하고 연명할 수 있는 기반으로, 새해 건설산업 혁신 과정에서 반드시 걸러내야 한다.

정부는 작년 기준 6만2000개에 이르는 건설업체 가운데 입찰만을 목적으로 하는 부실, 페이퍼컴퍼니가 15% 안팎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직접시공 확대 및 불법 대여 근절 등 생산체계 개편 방안의 일환으로 대대적인 부실업체 정리에 나서기로 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개별 공사의 입ㆍ낙찰 과정에서 기술 및 시공능력이 없는 부실업체를 걸러낼 수 있는 발주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정부는 이를 위해 창의적 대안제시형 낙찰제도를 새로 도입하고 가격보다는 기술변별력을 강화하는 제도 개선을 추진한다.

창의적 대안입찰제는 발주자가 제시한 내역보다 우수한 기술 및 공법을 적용하는 경우 투찰률에 관계없이 시공자를 선정할 수 있는 제도다. 제도가 도입되면, 오직 낙찰하한율 등 가격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운찰제’ 폐단을 개선할 수 있고 혁신적인 기술이나 공법을 보유한 업체가 적정 공사비를 보장받을 수 있는 단초도 마련될 수 있다. 부실업체의 수주를 사전에 차단해 부실시공으로 인한 하자나 사고를 예방하는 데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와 함께 종합심사낙찰제(이하 종심제) 등에 대한 기술변별력 강화도 추진된다. 종심제는 지난 2016년 최저가낙찰제의 폐단을 극복하고자 도입됐다. 하지만, 시행 2년여 만에 낙찰률은 최저가 수준(70%대 중반)으로 회귀했다. 가격경쟁을 부추긴 결과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대규모  건설공사에 부실 및 안전사고가 우려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정부는 과도한 가격평가 비중을 낮추고 기술력 비중을 높이는 내용의 제도 개선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특히, 기술 난이도가 높은 공사일수록 낙찰률이 더 떨어지는 종심제의 폐단을 해소할 수 있는, 기술 변별력을 높이는 데 방점을 찍을 방침이다.

정부는 또한 설계 단계에서부터 건설사가 참여하는 ‘시공책임형 건설사업관리 제도’ 도입을 검토 중이다. 설계서 작성부터 시공 노하우를 반영해 잦은 설계변경이나 그로 인해 총사업비가 늘어나는 부작용을 예방하는 동시에, 해외에서도 경쟁력을 갖춘 선진국형 건설기업을 육성하겠다는 전략이다.

이 밖에 엔지니어링 등 대형 설계용역에 관해서도 기술능력과 사회적 책임, 가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낙찰자를 선정하는 건설용역 종심제를 본격 시행한다.

 

  

머니(적정공사비) & 타임(적정공기)이 혁신의 완성

낙찰하한율 상향ㆍ단가 현실화ㆍ저가경쟁 유발 독소조항 제거

공기연장시 공사비 증액ㆍ간접비 합리적 보장기준 정비도

 

건설산업 혁신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적정 공사비 및 공기 보장이 0순위 조건이다. 저가경쟁 유발요인을 해소하고 발주기관의 불공정 관행 개선도 필수다.

정부는 경제정책 방향을 통해 예정가격 작성부터 낙찰자 선정, 계약이행 등 공공계약 전단계에 걸쳐 적정 계약대가가 책정, 지급되도록 관련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간접비 등 추가비용에 관해서도 합리적인 개선방안을 내놓기로 했다.

우선 예가 산정 기준을 명확히 하고 과도한 저가낙찰 방지를 위한 가격평가 기준을 개선한다. 입찰공고에서부터 주요 단가의 책정 및 적용내역을 밝히고, 종심제 균형가격 산정이나 동점자 처리기준 등도 객관적인 검증을 거쳐 개선을 검토하기로 했다. 저가투찰 및 저가경쟁 요인이 줄어들고 평균 낙찰률이 오르는 효과가 기대된다.

업계는 이에 더해 적격심사 낙찰제의 낙찰하한율 상향과 표준단가의 현실화가 조속히 병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벌써 20년 가까이 예정가격 대비 80% 수준으로 고정된 하한율은 업계의 수익성 악화 및 기술개발 노력을 제한하는 동시에, 부실업체의 수주로 인한 부실시공과 안전사고 우려만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낙찰률을 80% 수준으로 제약하는 계약제도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며 “건설사의 인력 및 기술개발 투자를 활성화하고 새로운 생산체계 개편안을 안착시키려면, 적어도 90%선의 낙찰률은 보장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무한대로 삭감되는 실적공사비를 대체하기 위해 도입된 표준단가 역시 보완이 요구된다. 시장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 지속적인 개선과 더불어 중소 규모 공사에는 한시적으로나마 적용을 배제하는 방안이 시급하다고 업계는 주장한다.

간접비 등 추가비용과 관련해서는, 이미 수조원대 소송전이 발발한 상황으로 더이상의 갈등과 분쟁을 예방할 수 있는 합리적인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또 앞서 감사원에서도 시정을 권고한 공기연장 등에 따른 총사업비 조정(증액) 절차도 개선해야 한다.

적정 공사비 못지않게 중요한 적정 공기 보장은 이미 단초가 마련됐다. 국토부는 지난해 12월 적정 공기 산정을 위한 기본공식을 내놨다. 이어 훈령 제정을 거쳐 3월부터 시행할 계획이다. 그간 보장되지 않았던 착공 전, 준공 후 준비 및 정리기간을 두고 현장 여건이나 공사 규모, 지질 조건, 기상ㆍ기후조건 등에 따라 공기를 조정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핵심이다.

건설현장 대형 사고 대부분이 휴일이나 돌관작업 중 발생하고 있는 현실에서 진일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아직까지 공기 산정 및 조정을 위한 데이터가 부족하고 실제 현장에 미칠 강제력이 미흡하다는 점은 보완해야 할 대목이다.

근로시간 단축제도 확대 시행에 따른 체계적인 분석과 유연한 대응이 필요하다.

한국건설산업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미 절반이 넘는 건설사들이 공기 부족을 경험한 바 있다. 또 44%에 달하는 건설사들은 근로시간 단축으로 공기 부족 문제를 겪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따라서 착공부터 준공까지 길게는 10년 이상 걸리는 건설공사의 특성상, 현재 시공 중인 현장까지 포함해 근로시간 단축과 각종 돌관작업 등에 대한 적정 수준의 공기연장 대책이 수반돼야 한다.

 

봉승권기자 sk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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