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에 대비해 산업부문간 융합을 강조하고 있는 가운데 또다시 건설공사의 분리발주 법제화가 추진돼 건설업계가 반발하고 있다.
11일 국회와 건설업계에 따르면 장정숙 국민의당 의원은 최근 소방시설공사의 분리발주 의무화를 골자로 한 소방시설공사업법(소방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소방시설공사를 종합건설업체에게 일괄 발주하지 않고 전문 소방설비업체에 직접 분리발주하도록 의무화하고 위반시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을 부과하는 내용이다.
현행 전기공사와 정보통신공사, 소방시설공사, 문화재수리공사는 건설산업기본법이 아닌 개별법에서 세부 공사 방식을 규정하고 있다. 이 가운데 전기와 정보통신, 문화재수리는 분리발주를, 소방은 일괄 발주하는 방식을 각각 채택하고 있다.
장 의원은 “소방시설공사가 건설공사에 포함돼 일괄 도급된 후 하도급으로 진행되면서 품질 저하와 안전성 확보 등에 문제가 있다”며 “책임시공 원칙을 위해서도 소방시설공사를 분리발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종합건설업계는 반대하고 있다.
소방시설공사를 분리발주하는 것은 공사의 효율성을 저해하고 하자책임 규명도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융ㆍ복합을 핵심으로 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역행하는 조치라는 시각이다.
소화전, 스프링클러 등 소화설비와 제연설비는 복도ㆍ계단, 출입문 등 건축구조물과 유기적인 연계시공 없이는 제 기능을 발휘하기 곤란하기 때문이다. 실제 서울메트로는 2013년 역사환경개선 사업을 하면서 소방, 기계, 전기 등 분리발주로 인해 건축분야의 통합관리가 어렵고 상호 책임 전가, 업체간 비협조 등의 문제가 발생해 통합발주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다. 2010년 준공 후 보름만에 화재로 전소된 인천 D초등학교 대강당의 경우 책임소재 불분명으로 인해 교육청이 소방설비업체를 대상으로 낸 손해배상소송에서 패소했다.
불공정ㆍ저가 하도급의 폐해를 막기 위해 소방공사를 분리발주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약하다는 지적이다. 하도급계약 적정성 심사, 하도급계약 공개 등 제도적 장치가 이미 마련돼 있어서다. 그 보다는 직접시공을 하지 않고 소방공사의 하도급을 허용하는 것이 더 근본 문제다.
분리발주 의무화로 발주자의 선택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은 위헌 논란에 휩싸일 소지가 높다. 소방공사를 분리발주하면 전체 공사비가 10∼20% 상승하는 등 예산낭비 우려도 제기된다.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2015년 분리발주된 소방공사 218건을 통합발주했을 때 157억7000만원이 절감되는 것으로 예상됐다.
4차 산업혁명과 산업 간 융합을 강조하며 규제완화를 추진하는 정부 정책에도 역행한다는 지적이다.
건설협회 관계자는 “분리발주에 따른 분절된 생산체계는 통합에 따른 시너지 효과를 전혀 발휘할 수 없고 신성장동력 상실과 산업경쟁력 약화를 초래한다”고 강조했다.
분리발주 법안이 국회 회기 때마다 발의돼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을 초래하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도 고질적인 문제다.
그 동안 소방공사 분리발주 입법은 2003년, 2005년, 2008년, 2009년, 2013년, 2014년 등 수차례 발의됐지만 논란 끝에 논의되지 못하고 번번히 폐기됐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소방공사 분리발주 의무화 대신 현행법처럼 일괄 또는 분리발주 여부를 건축주가 판단해 선택하도록 하면 된다”고 말했다.

 

김태형기자 k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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