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도공사(코레일)와 한국철도시설공단, 수서고속철도(SR)의 통합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기관 간 유사 중복업무에 따른 재정낭비를 해소하고 비효율적인 경쟁체제를 일단락 지어 철도의 공공성을 강화하기 이유에서다.
그러나 '공공성'이라는 가치에 매몰돼 섣불리 통합을 추진할 경우 철도시설 투자가 축소되면서 철도교통 서비스를 제때 제공하지 못하고 서비스의 질도 악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철도 신규·안전투자 위축 불가피

코레일과 철도시설공단의 통합 논의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대선 때 노동계에 제시한 '약속'에서 출발한다.

문 대통령은 한국노총과 정책협약을 통해 코레일과 철도시설공단의 통합을 약속한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정책협약에는 코레일과 철도시설공단을 통합해 이들 기관의 유사 중복업무에 따른 재정낭비를 해소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지난 2004년 철도시설은 국가가 소유·투자해 철도망을 확충하고 철도운영자는 시설 투자비 부담에서 벗어나 서비스 개선 등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단행한 철도 구조개혁의 성과를 무시하고 13년 만에 사실상 옛 철도청 체제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코레일과 철도시설공단의 유사 중복으로 인한 재정낭비를 방지하는 효과보다는 철도교통 서비스를 제때 제공하지 못하고 철도안전도 담보할 수 없는 부작용이 더 커질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 철도청 시절의 경우 지난 1990년부터 2003년까지 14년 간 철도시설 투자는 총 8조6000억원 수준으로 연평균 6000억원가량에 불과했다.
반면 철도시설공단 출범 이후 올해까지 14년 동안 철도투자는 총 64조원, 연평균 4조6000억원으로 같은 기간 대비 7.4배 급증했다.
철도시설에 대한 이 같은 투자 확대는 경부고속철도 1·2단계, 호남고속철도, 수서고속철도 등의 개통으로 이어져 국민들에게 철도교통 편의를 조기에 제공하는 성과를 거뒀다.
철도 총연장도 2004년 이후 900㎞ 증가해 2003년 이전 같은 기간 늘어난 49㎞에 비해 18배로 대폭 증가했다.
철도안전과 해외 철도시장 진출에도 빨간불이 켜질 가능성이 크다.
철도 구조개혁 이후 철도안전에 대한 국가와 시설관리자의 역할과 책임이 명확해지면서 안전투자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철도사고는 급감했다.
그러나 코레일과 철도시설공단이 통합되면 안전투자의 축소도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건설과 운영이 통합된 구조로는 해외사업 진출도 여의치 않은 실정이다.
철도청 시절 저조한 철도시설 투자로 건설 노하우 확보가 어려웠던 탓에 해외 철도건설 진출 실적은 제로였다.
게다가 최근 대규모 해외 철도사업은 기반시설과 운영시스템을 분리 발주하고 있는 추세인 만큼 건설과 운영, 각 분야별 컨소시엄 구성에 따른 역할 분담이 해외 진출의 중요한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철도 서비스 질 악화 우려

지난해 말 시작된 코레일과 SR의 경쟁체제는 불과 7개월 만에 최대 위기를 맞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 때 철도노조와 경쟁체제란 이름 아래 진행된 철도 민영화 정책을 반대한다는 내용의 정책협약을 체결한 데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도 야당 의원 시절 SR 출범을 반대했다.
이에 따라 국토부는 조만간 전문가 중심의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코레일과 SR의 분리운영 성과를 평가하고 결과에 따라 통합 여부를 판단할 방침이다. 그러나 코레일과 SR 통합이 독점체제 회귀에 따른 철도 서비스의 질 악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시각이 적지않다.
SRT가 개통되면서 SR은 KTX 대비 10% 싼 요금을 책정했고 운행 중단 배상금제와 열차 출발 후 반환제도를 도입·운영했다. 또한 객실 내 전원콘센트를 완비했고 특실서비스도 차별화하는 전략을 들고 나왔다.
이에 뒤질세라 KTX도 마일리지 제도를 부활시켰고 기존 할인제도의 할인율을 확대했다. 차내 전원콘센트도 SR을 따라 설치했고 특실서비스도 부활시켰다. 경쟁체제에 따라 할인정책, 부가서비스, 연계교통편 개발 등에 걸쳐 경쟁 효과가 직접 눈으로 확인된 것이다.
그러나 코레일과 SR의 통합으로 다시 독점체제로 돌아갈 경우 서비스의 질이 악화될 게 불보듯 뻔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최석인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기술정책연구실장은 "코레일과 철도시설공단, SR의 분리운영은 철도 서비스의 제고로 철도의 수요를 늘릴 수 있고 수요 증가는 철도건설에 반영된다"면서 "코레일이 건설·운영을 독점적으로 수행할 경우 건설과 유지보수 등에서 퇴보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경남기자 k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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