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공사의 특성을 반영한 담합 손해액 산정방식을 법원이 채택하기 시작했다.
 제조업에 맞춰진 전통적인 손해액 산정방식으론 현장마다 여건이 다르고 원가율 차이가 큰 건설공사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아들인 것이어서 주목된다.
 17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4대강 사업 입찰담합 관련 손해배상소송을 맡고 있는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11일 공판에서 이 사건의 손해액 산정을 담당할 감정인으로 서울대 경제연구소와 한양대 경제연구소 2곳을 선정했다.
 이번 재판에서 감정인 선정이 주목받는 이유는 이들이 각각 다른 방식으로 손해액을 산정하기 때문이다. 서울대 경제연구소는 전통적인 ‘계량경제학 방식’으로, 한양대 경제연구소는 건설업에 특화된 ‘비용기반 접근방식’으로 각각 손해 감정평가를 진행한다. 법원은 복수의 감정인이 제출한 평가결과 중 하나를 택하거나, 종합해서 최종 손해액을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입찰 건마다 제각각인 건설공사의 특성을 손해액 산정에 반영해 달라는 건설사들의 지속적인 요구를 법원이 수용한 것이어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 4대강 소송은 건설공사 입찰담합 손배소송전에서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소송금액 자체도 크고 정치ㆍ사회적으로 주목받는 사업이어서다. 한국수자원공사는 4대강 보 1차 턴키 사업과 보현산다목적댐, 낙동강하굿둑 배수문, 영주댐 건설공사 등 총 15개 공사에서 담합한 17개사를 대상으로 17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소송을 지난 2014년 제기했다.
 4대강 1차 턴키 담합 과징금 1116억원을 포함해 총 과징금만 1563억원이었다. 명시적으로 각사당 10억원씩 손배를 청구했지만 재판 결과에 따라 과징금에 맞먹는 배상금을 물 수도 있다. 실제 지난해 서울지하철 7호선 인천구간 건설공사 입찰담합 손배 소송에선 법원이 634억원의 손해배상 결정을 내렸다. 이는 공정거래위원회가 부과한 과징금(66억원)보다 10배 가까이 많다.
 하지만 건설업계가 주장해 온 비용기반 접근방식으로 손해액을 산정할 경우 실제 배상액이 대폭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기존의 계량경제학 방식에선 담합행위로 인해 형성된 실제 낙찰가격과 그 담합이 없었을 경우에 형성됐을 가격(가상 경쟁가격)과의 차이를 손해액으로 산정하는 방식을 주로 쓴다. 제조업처럼 표준화된 상품에 적합한 방식이다. 공사별로 목적물이 다르고 입찰방식, 설계, 자재, 시공방법, 시공여건, 발주처의 공사비용 산정방식 등이 제각각인 건설공사엔 부적합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반면 비용기반 접근방식은 해당 공사에 투입되는 직접공사비와 간접비, 일반관리비, 이윤비율 등을 기초로 짜여진 금액(비용)과 낙찰가격 간의 차액을 손해액으로 계산한다. 여기에 낙찰자의 설계점수나 건설경기 등의 변수가 추가된다.
 서울대 이인호 교수팀은 ‘공공공사 입찰담합 손해액 산정연구’ 보고서에서 “낙찰자 설계점수, 건설경기 등의 변수를 적용해 손해액을 감정하면 단순 낙찰률만 반영했을 때보다 손배액이 줄어든다”고 분석했다.
 4대강 담합 손배 소송을 위한 감정평가에는 최대 1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인 건설공사 손해액 감정평가엔 6개월 정도가 걸리지만 4대강 사업은 워낙 규모가 커서 배 이상 소요된다는 게 감정평가기관의 설명이다.
 이번 감정평가 결과는 현재 진행 중이거나 향후 진행될 건설공사 담합 손배소송에도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당장 새만금방수제 동진 3ㆍ5공구, 새만금방수제 만경 5공구 손배 소송에서도 법원이 4대강처럼 복수 감정인을 채택했다.
 현재 건설업계에선 60여개사가 1조원이 넘는 담합 손배소송에 휘말려 있다. 한국가스공사는 천연가스 공급설비ㆍ주배관 공사 담합과 관련해 19개 건설사를 대상으로 1000억원대 손배소송을 제기했고, 철도시설공단도 호남고속철도 건설공사 담합에 관여한 38개사(중복 포함)에 400억원 규모의 소송을 냈다.
 국가 차원의 대응수위도 높아졌다. 법무부는 포항 영일만항 방파제 공사 입찰 담합 건을 포함해 모두 6건, 40여개사를 상대로 손배소송을 진행 중이다. 최근 영일만항 방파제 사건과 관련, 법원으로부터 35억원의 배상판결을 받아내기로 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과징금 폭탄에 이은 무더기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건설사들이 힘겨워하고 있다”며 “법원이 손해액 산정방식이라도 합리적으로 개선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형기자 kth@<건설을 보는 눈 경제를 읽는 힘 건설경제-무단전재 및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