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급 파괴’로 건설기업 특유의 수직적 기업문화를 수평적이고 창의적인 조직문화로 바꾸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직원 간 호칭을 바꾸는 것 만으로는 혁신에 한계가 있는만큼 연공서열식 보수체계를 함께 개편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22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삼성물산은 기존 6단계 직급체계를 3단계로 단순화하는 인사개편을 이달 초부터 시행 중이다.
새 개편에 따라 사원, 주임, 대리, 과장, 차장, 부장 등 6단계 직급이 사라지고 그 대신에 개인의 직무역량 발전정도를 나타내는 CL(Career Level) 1∼3 체제가 도입됐다. 수직적 상하관계를 나타내던 직위체계와 호칭을 보다 수평적으로 바꾸려는 취지다. 과거의 사원∼대리는 ‘선임’으로, 과장∼차장은 ‘책임’, 부장급은 ‘수석’으로 각각 바꿔 부른다. 다만, 팀장, 그룹장, 파트장, 임원은 기존 직책으로 불린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사원∼대리 간 8년, 과장∼차장 간 11년 등 10여년 터울인 직원들끼리 같은 호칭으로 부르다보니 확실히 직급을 떠나 서로 존중하는 분위기가 생겼다”고 말했다.
태영건설도 올 1월부터 사원∼대리를 ‘사원’으로, 과장∼부장은 ‘선임’으로 바꿔 부르고 있다. 6단계 직급이 한꺼번에 2단계로 줄었다.
이 같은 건설기업의 직급 파괴 실험은 4∼5년 전부터 본격화됐다.
포스코건설은 말단 사원부터 사장까지 P1∼11단계로 나눈다. P6는 그룹장, P5는 그룹리더, P4는 시니어 매니저 P3ㆍ2는 매니저로 부르는 식이다. 특히 옛 부장 직급을 P4∼6에 분산시켜 시니어 매니저부터 그룹장까지 폭넓게 맡기고 있다. 포스코는 2년 전 직급체계를 한 번 손질했다.
신세계건설은 2015년 3월부터 이른바 ‘페이밴드(pay band)’제도를 도입했다. 4단계로 나뉜 각 밴드 내에선 개인의 성과에 따라 연봉 차이를 두고, 밴드간 이동을 통해 과거 승진시스템의 장점을 살린 제도다. 호칭은 사원부터 초임 차장은 ‘파트너’로, 차장 2년차부터는 ‘치프 파트너(Chief Partner)’로 불린다. 신세계건설 관계자는 “호칭 속에 연차가 가려져 맘껏 역량발휘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직급 파괴 실험이 꼭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한화건설은 2013년 대리부터 차장을 ‘매니저’로 묶어 부르는 인사 실험을 했다가 2년여만에 기존 직급 체계로 복귀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수평적 조직문화는 직급 호칭을 바꾸는 것만으론 성공할 수 없다”며 “서열 정리를 끝낸 후 일을 시작하는 한국적 정서도 고려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전통적인 직급명을 없애고 연공서열식 인사시스템을 혁신하려면 직무ㆍ능력에 따른 보상제도가 병행돼야 한다고 말한다.
최은정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대부분 건설사들이 직급호칭을 개편하고도 보수체계 기준인 직급ㆍ승진제를 사실상 유지하고 있다”며 “수평적 조직문화를 정착시키려면 새 직급체제에 기반한 보수시스템이 동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태형기자 kth@<건설을 보는 눈 경제를 읽는 힘 건설경제-무단전재 및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