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사회기반시설(SOC) 스톡이 충분하다며 투자 규모를 줄이고 있지만 시설 노후화로 인한 재투자비용을 감안하면 향후 5년간 22조∼47조원을 더 투자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박수진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15일 건산연이 주최한 ‘확장적 재정정책과 SOC투자 확대 세미나’에서 “우리 경제의 장기 성장잠재력 확보와 단기적 경기부양을 위한 새로운 SOC 투자전략이 필요하다”며 이 같이 밝혔다.
박 연구위원은 “소형 아파트 단지는 장기수선충당금을, 기업도 감가상각충당금을 매년 쌓아 미래 재투자에 대비하는 것처럼 나라살림을 이끄는 정부도 한꺼번에 닥칠 재투자 부담을 분산하기 위해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건설된 SOC 평균 수명주기(40∼50년)가 도래하면서 안전과 재투자 수요가 급증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한국은행 자료를 토대로 산출한 국내 SOC스톡은 2015년 기준으로 643조3770억원 규모다. 그 동안 정부가 외면했던 감가상각충당금(상각 누계액)도 스톡의 53.7%인 345조4720억원에 달한다. 박 연구위원은 “SOC스톡의 절반이 넘는 돈을 재투자에 쏟아부어야 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정부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지만 애써 외면해왔다. 당장 쓸 돈(신설투자)도 부족한데 향후 40∼50년 뒤에 투입할 돈(재투자)을 쌓아둘만큼 곳간(재정)이 넉넉하지 못해서다.
재투자를 위한 준비를 미룬 대가는 혹독하다. 미국은 1990년대 초반까지 SOC에 적극적으로 투자했다가 이후부터는 GDP 대비 투자비중을 급격히 줄였다. 그 결과 2003년부터 유지ㆍ관리비가 신규 투자 및 개량 비용을 초월했다. 미국의 2015년 전체 SOC 예산 중 신규투자는 1810억달러(43.5%), 유지ㆍ관리투자는 2350억달러(56.5%)였다.
미국 토목학회는 2016∼2025년까지 미국의 인프라 투자예산이 1조9000억달러인 반면 필요 투자금액은 3조3000억달러라고 추정했다. 무려 1조4000억달러가 부족한 셈이다. 토목학회는 최근 갱신한 자료에서 미국의 인프라 성능수준을 낙제등급인 ‘D+’로 평가하면서 2020년까지 3조6000억달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향후 10년간 약 1조달러의 대규모 인프라 투자계획을 내놓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과 EU 등도 확장적 재정정책 기조 하에 SOC 투자를 늘리고 있다. 우리 정부만 2016∼2020년까지 SOC 투자를 매년 6%포인트씩 줄이는 ‘역주행’ 시나리오로 대응 중이다.
박 연구위원은 “국내 SOC스톡이 충분해 투자금액을 줄여도 된다는 생각은 오해”라며 “이미 시작된 재투자 수요를 예산에 반영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국내 SOC 재투자비용이 2016년부터 향후 10년간 연간 약 5조3000억원(총 53조4000억원)이 소요되고 이후 2026∼2035년엔 연간 약 11조8000억원(총 118조2000억원), 2036∼2045년엔 연간 약 30조원(총 300조3000억원) 등 시간이 흐를수록 재투자 부담이 커질 것이라고 봤다.
박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SOC 투자도 신설투자 비중이 점차 줄고 재투자와 개량 투자 위주로 재편될 것”이라며 새로운 SOC 투자전략을 제시했다.
그는 △재투자와 개량 예산을 따로 편성한 투자시스템 구축 △개량ㆍ신설을 위한 스마트 SOC 구축 △노후자산 개선 기본계획 수립 △민간투자사업 활성화 등을 실천방안으로 내놨다.
한편 이번 세미나에서는 SOC스톡이나 투자적정성을 평가하는 기존 방식의 문제점도 지적됐다.
이상건 국토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의 사회간접자본 투자적정성 분석연구’에서 SOC스톡의 적정성은 어떤 국제비교 기준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주장했다.
예컨대 국토면적당 인프라 연장(㎞) 순위로 평가하면 한국이 세계 상위권이지만 높은 인구밀도나 좁은 국토면적을 반영한 기준으로는 하위권이라는 것이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대안으로 인프라 부하지수 중심의 적정성 분석방법론을 제시했다. 부하지수는 도로ㆍ철도 등 시설이 실제 감당하는 승객ㆍ화물 수송실적을 연장길이로 나눈 값이다.
그는 SOC 투자방향도 양에서 질로, 건설보다 유지보수 중심으로, 경제성 기준보다 안전ㆍ친환경 기준으로, 손익보다 목표 지향적으로, 지역간 균등배분보다 선택과 집중으로 각각 전환할 것을 촉구했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인프라성능종합지수를 개발해 상시모니터링하고 선진국 수준의 수송부하지수를 달성할 수 있는 인프라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태형기자 kth@<건설을 보는 눈 경제를 읽는 힘 건설경제-무단전재 및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