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가뭄에 빠진 건설업 연쇄부도로 가나?
중견 건설업체 A사는 하도급 공사비 지급 등 운영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최근 은행으로부터 900억원의 단기대출을 받았다. 회사채나 기업어음(CP) 추가 발행을 추진했지만 가로막히면서 은행 단기대출로 선회한 것. 회사 관계자는 “건설업에 대한 우려의 시각이 많아지면서 어지간해선 회사채 발행은 언감생심”이라고 푸념했다.
건설업계가 돈 가뭄에 시달리면서 연쇄부도의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금융권의 높아진 문턱을 넘지 못한 중견 건설사들은 회사채 발행이 가로막혀 자금조달에 애를 먹으며 유동성 고갈로 부도 우려를 키우고 있다.
사정이 낫다는 그룹 계열 건설사들조차 건설업에 대한 금융권의 까다로운 자금지원 기준 탓에 예전보다 20~30% 이상 오른 금리를 부담하며 회사채나 CP 발행을 하고 있어 회사 재무에 부담이 커진 상황이다.
◆ 현실화하는 연쇄 부도 우려
건설사들의 재무 상황을 들여다보면 업계가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지 드러난다.
올해 6월 말을 기준으로 공시 실적이 있는 시공능력 상위 50대 건설사 중 8곳은 이미 자본잠식 상태. 시공능력 38위인 극동건설은 이미 부도가 났고, 벽산건설 풍림산업 남광토건 등은 완전히 자본이 잠식돼 거래소의 관리종목으로 지정되어 있다.
진흥기업(42.2%), 동아건설산업(4.8%), 한일건설(78.2%), 삼호(6.8%) 등도 부분 자본잠식 상태다.
부채도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중. 상위 50대 건설사의 부채는 6월말 현재 157조9000억원으로, 2010년말(153조3000억원)에 비해 4조6000억원이 늘었다.
이미 국내 건설사 상위 100위 업체 가운데 21개 업체가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를 겪고 있다. 시공능력평가 40위권내 건설사 가운데 극동건설을 비롯해 벽산건설, 풍림산업, 삼환기업, 남광토건 등이 자금난을 이기지 못하고 법정관리나 워크아웃 신세에 처했다. 금호건설 등 5개사는 워크아웃이, 동양건설산업과 극동건설 등은 법정관리가 진행 중이다.
이런 가운데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건설사 33개 가운데 절반에 육박하는 14곳이 올 상반기 적자를 기록해 업계 불황의 심각성을 예고하고 있다.
내년 상반기에 돌아오는 3조원대의 회사채 만기도 잠재된 복병이다.
◆ ‘돈줄’은 마르는데 불황은 끝이 안보이는 터널
금융권 역시 침체된 부동산 경기가 1~2년내 단기간에 회복될 것으로 전망하지 못하면서 자금 지원보다는 회수에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이미 올 초부터 금융권은 건설 관련 업종에 대한 신규 자금지원은 기피해왔다. 한 시중은행 기업여신담당 임원은 “추가 자금이 얼마나 들어갈 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은행의 대출 재원인 예금을 허투루 쓸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대기업 계열 건설사가 아닌 곳은 (신규자금 지원이) 어렵다고 봐야 한다”면서 “대부분의 은행들이 보수적으로 자금을 운용하고 있어 올해 안에 추가로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건설사가 더 생길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자금난을 하소연하는 건설업계의 앓는 소리는 커지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건설업계 돈가뭄의 해갈은 당분간 쉽지 않아 보인다.
몇달만 지나면 새 정권이 들어서지만, 그렇다고 상황이 썩 달라질 것은 없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안철수 후보 모두 주택정책공약의 기조를 서민주거복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만큼, 어느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당장 건설업계가 반길 ‘선물 보따리’는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나마 해외 수주에 기댔던 건설사들조차 급격히 떨어진 원·달러 환율로 직격탄을 맞게 됐다